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폭스

 @foxda25

삼와

 @CoConotnyam

 남망기는 제 몸에 딱 들어맞는 하얀 정장을 매만지면서 걸어가고 있었다. 조금만 보폭을 크게 해도 바로 복사뼈가 드러날 정도인지라 불편할 만도 하건만 예의 그 무표정은 여전했다. 걸어갈 때마다 주변에서 오는 친근한 인사들도 가볍게 끄덕이기만 하고 지나가는 것이, 언뜻 보면 다급해 보이기도 했다. 마침내 굳게 닫혀있는 문 앞에 다다랐을 때에는 그답지 않게 노크도 없이 벌컥 열고 들어갔다.
  "남잠?"
 방 안에 홀로 있던 남자는 갑작스레 열린 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돌아봤다가 곧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. 남자 또한 남망기처럼 몸에 꼭 맞는 흰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, 유일한 다른 점은 머리에 붉은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다. 붉은 천은 멀리서 보면 그저 그러나 고급스러운 반투명한 질과 복잡하고 화려한 자수가 놓여 있었다. 남망기는 저 천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. 먼 과거, 아예 생 하나를 뛰어넘은 그때, 우리는 천지신명께 삼배를 드리고 한평생 떨어지지 말자 도려의 연을 맺었으나 그것은 우리 둘뿐이었다. 우리를 잘 아는 사람들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 게 한이라면 한이긴 했다. 사랑스러운 도려가 그런 제 마음을 눈치채고 써준 것이 내심 고마웠다.
  "위영."
 작은 부름에 남자, 위무선은 얼른 이리 와보라며 제 옆자리를 톡톡 쳤다. 사랑하는 이의 말을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, 남망기는 망설임도 없이 위무선에게 성큼 다가가 그가 원하는 대로 옆에 앉았다. 더 가까이 오니 티는 나지 않지만 연하게 발린 입술이나 눈 화장에 저절로 손가락이 오므라들었다. 위무선은 귓불을 발갛게 물들이는 수줍은 남망기의 모습에 미소를 짓고 귀를 만지작댔다. 마구 입맞춤을 하고 싶지만, 명색이 결혼인지라 옅게나마 한 화장을 망가트릴 순 없었다. 대신 두 손으로 턱을 받친 위무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.
  "남잠, 나 예뻐?"
  "응."
 망설임도 없이 즉각 나온 답에 위무선은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. 우리 신랑님, 어찌 이리 귀여워. 근질근질한 마음을 못 참고 결국 콧대며 눈가며 뺨에 마구 입 맞추면서 두 팔로 남망기의 목을 끌어안았다. 전과 같이 길게 기른 머리카락이 사랑스러웠다.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비비 꼬면서 어깨에 턱을 괴고 있던 위무선이 별안간 한숨을 푹 내뱉었다.
  "나도 머리카락 기를 걸…."
  "괜찮아."
  "괜찮기는? 내 머리카락 가지고 놀기 좋아하잖아. 매일 빗겨줬으면서."
  "짧아도, 할 수 있잖아."
 한순간 뒤통수를 훅 치고 지나가는 말에 괜히 골이 띵했다. 아이고, 남잠아…, 남잠…. 열이 올라 말랑한 귀를 뺨 대신 연신 조몰락거리며 만져댄 위무선이 마지막으로 남망기의 입술에 꾹 입 맞췄다. 서로 다른 색의 립을 발랐으나 어우러지듯 섞인 게 되려 마음에 들어 만족스럽게 웃었다. 곧 시작해야 한다는 걸 알리려고 잠깐 들어왔던 강만음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빽 소리를 지르며 나가버렸다. 남망기는 아예 무시했지만 위무선은 잔소리 섞인 챙김을 익숙하게 흘려들으며 어어, 하고 설렁설렁 대답했다. 제 허리를 소중하게 감싸 안은 든든한 팔에서 벗어나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떨어져야 할 시간이다. 하지만 몇 시간만 참으면 평생을 진득하게 붙어있을 수 있는데 뭐 어떤가. 위무선은 기다릴 자신이 있었다.
  "남잠."
  "응."
  "나 여기 있어."
  "응."
 서로 이마를 맞댄 위무선과 남망기는 강만음의 재촉이 다시 한 번 들려오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. 손을 꽉 맞잡은 둘 사이에서 웃음이 와르르 쏟아졌다. 마음 한가득 몽글몽글한 행복감만이 존재했다. 이제, 함께 걸어갈 시간이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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