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산덕 

@duck_056 

산덕 - 그림.png

 마파두부  @mapatofu_mdzs

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고선 뒤늦게 깨달았다. 오랜만에 들었음에도 익숙한 그 고저 없이 담담한 저음의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, 그리고 자신이 그 목소리를 피해 오랫동안 도망쳐다녔다는 사실을.

위영. 당신을, 좋아합니다. 자신이 채 도망가기도 전에 흰 정장을 입은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저에게 건네며 그리 말했다. 생각지도 못한 내용에 얼결에 두 손으로 받은 꽃다발을 들어 올려 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물었다.

"계약은 끝났을 텐데, 애프터서비스라도 되는 거야? 역시 남잠이야. "

결국 제가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알아듣지 못한 척 장난스레 넘기려는 시도가 한계였다. 하지만 그런 자신을 꾸짖듯이 위영, 하곤 묵묵히 이름만을 부르는 모습에 고개를 슬며시 돌리고 꽃다발을 든 손을 내리자, 맞은편에서 그 손을 감싸 그 위로 포개는 것이 느껴졌다.

“저와 결혼해주세요.”

“애초에 사귀지도 않는데?”

상상도 못 한 말에 저도 모르게 강징과 장난칠 때처럼 가볍게 대꾸했다. 그런 자신의 말이 마음에 차지 않았는지 손 위로 느껴지는 악력이 강해져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뱉자, 곧바로 그 힘이 약해졌다. 그러면서도 놓아줄 기미는 보이지 않아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자 여느 때처럼 단아한 그 얼굴 옆으로 붉게 물든 귀가 시야에 들어왔다.

장난으로 친구들과 함께 산 새해 로또에서 1등의 주인공이 되어 날 백수로 전락해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던 와중, 심심풀이로 방문한 심부름센터에서 남망기와 만났다. 자신의 로또 당첨 소식을 듣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저에게 몰려와 치근덕거려 사람에 질린 와중에 보인 남망기의 그 차가운 반응에 꽂혀 자신이 그에게 치근덕거린 것이 한 달. 주변에 아무런 언질도 없이 모든 연락을 끊어버리고 해외로 도망치듯 남망기를 피해 종적을 감춘 것이 몇 달 전이었는데 어떻게 안 것인지 제 앞으로 찾아와선 결혼해달라 말한 것이었다

무표정한 얼굴에 고저 없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점점 제 반경 속에 들어오는 것이 무서워 멀리한 것이었는데, 이리 찾아올 줄이야. 왜 내가 남잠을 피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? 생각하면서도 도달하지 못했던 답이 터무니없는 결혼 이야기로 알게 된 남망기의 감정과 함께 알 것만 같았다.

“그러면, 우리 먼저 서로를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할까?”

애초에 고작 한 달 동안 계약 관계로 있었던 게 다인데, 결혼은 너무 갑작스럽지 않아? 하하하 웃는 제 모습을 누그러진 표정으로 보더니 응, 하고 답하는 모습에 손뿐만 아니라 제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.

그나저나 남잠도 남자, 나도 남자인데 결혼이라니. 뭔가 말이 잘못 나온 거겠지? 그러면서도 흰 정장을 입고 따뜻한 눈빛으로 제 품의 꽃다발을 쳐다보는 남망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똑같은 흰 정장을 입고 예식장 앞에 마주 서 서로를 지켜보며 맹세의 약속을 하는 자신들의 미래가 떠올랐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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